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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1 라디오] "집중 인터뷰" 11월 4일 한-아프간 친선협회 회장 이영일 회장님 인터뷰

인터뷰 전문 

 

마법의 콩을 심었더니 하늘을 향해 거대한 콩나무가 뻗어가고

또 용감하게 콩나무를 타고 올라간 잭이 거인을 물리치고 보물을 얻는다는

잭과 콩나무 이야기를 아마 잘 아실 겁니다.

전쟁으로 피폐해진 땅 아프가니스탄에도 기적의 콩나무가 자라고 있습니다.

 

오늘 집중인터뷰에서는

영양결핍으로 신음하는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에게

희망의 콩 심기 운동과 콩 가공사업을 돕고 있는

한국 아프가니스탄 친선협회 이영일 회장을 초대합니다.

척박한 땅 아프가니스탄에  기적의 콩나무가 자라는 사연과

콩이 아프가니스탄에 주는 희망,

또 지원사업에 대해서 함께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집중인터뷰가 주목한 이 사람은

아프가니스탄에 희망의 콩 심기 사업에 범국민적 참여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한국 아프가니스탄 친선협회 이영일 회장입니다.

 

이영일 회장은

서울대 문리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발전정책연구과정과

동국대학교 행정대학원을 수료했습니다.

통일원 교육홍보실장, 통일원 통일연수원장, 11대 12대 15대 국회의원을 역임했습니다.

현재 사단법인 한중문화협회 회장, 한국 아프가니스탄 친선협회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반갑습니다.

 

MC박태남: 외국 쪽으로 일을 굉장히 많이 하시는 것 같아요.

 

이영일: 정계를 떠난 후부터는 정치 쪽에 관심을 쏟는 것보다는 제가 평소에 마음속으로 생각했던 사회봉사활동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부터 한민족복지재단운동에도 참여했고 한중 친선사업에도 관여하게 됐고 그러는 과정에서 전쟁이 끝난 직후 아프간이 너무 상황이 심각하기 때문에 아프간에도 한 번 관심을 가져보자. 그래서 의료봉사단을 이끌고 2002년 아프간전쟁이 끝난 직후 우리나라와 국교도 없고 아무런 외교적인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시기에 젊은 의사들 혈기 넘치는 의사들 서너 명하고 간호원들 한 6명, 그리고 의약품들을 가지고 아프가니스탄에 들어간 것이 오늘날 아프가니스탄 친선협회 회장을 맡게 된 배경입니다.

 

MC박태남: 왜 하필, 봉사할 곳이 많을 텐데 왜 아프간을 찾으셨는지 동기가 있으십니까?

 

이영일: 아프가니스탄은 원래 우리 1차적인 관심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마치 그곳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던 어떤 의사 한 분이 우리 한민족복지재단에 찾아와서, 재단의 이념을 보니까 세계를 위한 큰 찌원활동을 한다는 것이 목적으로 돼 있으니까 기왕이면 이 지역도 좀 도와주십시오. 그 당시는 23년간 계속된 전쟁으로 말미암아 어린아이 5명 가운데 3명이 고아고 과부가 너무 많습니다. 남자들이 너무 많이 죽었고. 그 당시는 내전이 또 계속됐어요. 79년에 소련이 물러간 후에는 자체 내부의 군벌들간의 전쟁 때문에 아프간 전 지역이 파괴된 것은 외국 군대가 파괴한 것보다는 내전 과정에 파괴된 부분이 더 많습니다. 그 다음 탈레반이 한 7년간 지배하다가 미군의 알카에다 공격으로 탈레반 정권이 무너진 후에는 비교적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서 안정을 찾습니다만 100% 파괴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 참담한 곳이었어요. 가서 보니까 그 얘기 듣고 한 번 가봤는데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모를 정도로 완파돼 있습니다. 저는 대학을 몇 군데 방문해봤는데 유리창 있는 대학이 하나도 없어요. 저는 6.25사변 당시 국민학교 5학년이었습니다. 5학년 6학년 중학교 1학년 휴전 반대 데모까지 참여했으니까 그 당시 6.25사변의 참화를 방불케 할 만큼 그렇게 심각했습니다.

 

MC박태남: 가서 보시면서 정말 내가 일할 곳 도와줄 곳은 바로 여기다라는 생각이 바로 드셨던 모양이네요.

 

이영일: 북한도 제가 6번 갔기 때문에 북한 가서도 해야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하지만 북한 가서는 일할 맛이 별로 안 납니다. 왜냐면 자기가 원하는 장소에 어려운 사람들을 만나서 직접 대화하면서 도와줄 수 없는 환경입니다. 조선노동당 가이드들이 만나라는 사람만 만나고 가라는 곳만 가고 또 구체적으로 내가 지원하는 물자가 어떻게 쓰이는지를 전혀 모릅니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 가보면 우리 의사들이나 한의사까지 다 가더라도 그 사람들이 현장에서 정말 고통받고 있는 사람 만나서 직접 붕대 감아주고 진찰하고 약을 주고 그렇기 때문에 봉사한다는 느낌을 실감할 수 있는 곳이 아프가니스탄이고. 북한에서는 누구를 도와준 일이 없습니다. 약을 가지고 가면 평양의학대학에 맡기고 왔지 그 약이 어떻게 쓰이는지 모릅니다. 또 북한 사람 만나서 주사 한 방 놓을 기회도 안 줍니다. 완전히 북한 사람과 차단된 방문을 6번 했기 때문에 10번 하나 100번 하나 *****는 똑같아요. 사람들과 접촉 못하게 되는데 아프간은 들어가서 얼마든지 봉사해도 전부 감사하고.

 

MC박태남: 그런데 아프가니스탄 하면 저희가 아픈 기억도 있지 않습니까?

 

이영일: 2007년

 

MC박태남: 네. 굉장히 아픈 기억. 굉장히 아프가니스탄은 험한 지역. 들어가면 위험한 지역 이렇게 그 사건으로 인해서 인식돼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말씀 들어보니 봉사 차원에서는 큰 문제는 없는 모양이죠?

 

이영일: 2007년 샘물교회 교인들 사건이 우리에게 굉장히 큰 충격을 줬고 제가 그 사건으로 말미암아 아프가니스탄 친선협회를 해체하려고 했습니다. 그 당시 심정은. 그런데 그분들이 한 가지 실수를 했어요. 저는 아프가니스탄에 두어 번 들어갈 때마다 대형 버스를 이용하지 않고 지프차를 이용했습니다. 지프차 여러 대가 같이 나란히 가면 탈레반이 습격을 않습니다. 서로 연결되니까. 그런데 지난번 샘물교회 교인들은 여행사 버스를 타고 한꺼번에 가다가 중간에 운전사와 내통하는 탈렐반 첩자 때문에 체포돼서 끔찍한 꼴을 당했잖아요. 원래 그분들이 들어갈 때... 저 밑에 칸다하르 지방에 힐라라는 병원을 한민족복지재단 지원으로 만들어놨습니다. 왜냐면 아프간 가면 병원이 없으니까 저랑 같이 갔던 일행이 한 번 고열이 나서 넘어졌는데 약이 있습니까 치료가 있습니까. 다행히 인도인 의사 내외가 여행 중에 자기 갖고 있던 주사와 약을 가지고 같이 갔던 우리 사무총장 넘어진 사람을 살려냈는데 병원도 약도 없기 때문에 아프면 죽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걸 하나 만들면서 우리가 역점을 뒀던 건 재활치료시설이 없어서 그 당시 정인섭이라고 하는 대한제강 사장이 우리와 같이 갔다가 자기가 2만 달러를 내서 힐라병원에 재활시설을 만들어줬어요. 전쟁 때문에 다리 부러지고 팔 부러진 사람들을 재활훈련 시키면 다시 걷게 되잖아요. 그런 시스템을 만들었더니 굉장히 인기가 올라서 오는 사람 신청대로 수용할 수 없었어요. 또 힐라병원에는 간호사가 없습니다. 훈련된 간호사가 없고 또 남자들이 여자 몸에 손대는 것을 원치 않아요. 그래서 간호훈련을 받은 여자들을 좀 만들어서 힐라병원을 운영하다보니 한동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이 여름에는 가서 병원일을 도와줬습니다 방학 동안. 방학 아닌 기간 중에 봉사자들을 모집하다보니 샘물교회 사람들이 봉사자로 한민족복지재단 명의로 여권을 받아서 갔다가 그런 낭패를 봤습니다.

 

MC박태남: 그러니까 얼마나 회장님 입장에서는 가슴 아프고 놀라셨겠어요

 

이영일: 그건 선교와 관계 없는 봉사활동이었는데 오해를 많이 받아서 샘물교회도 타격이 컸지만 우리 재단도 상당히 어려움을 많이 겪었습니다.

 

MC박태남: 보통 난이라고 해서 인도음식점에 가서 나오는 밀가루로 만든 빈대떡 같은 거. 그 아프가니스탄 국민들 주식이 그거죠?

 

이영일: 그냥 밀가루를 반죽해서 화덕에 휙 집어던지면 그대로 구워져요. 그것이 주식입니다.

 

MC박태남: 밀가루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재배하나요?

 

이영일: 밀은 재배가 됩니다. 그 빵을 만들면 시장거리에 가면 난 파는 게 아주 쭉 널려 있어요. 제가 사만간 지역이란 데를 갔더니 3월이니까 얼마나 추워요? 담요 한 장 없이 노천에서 가족들이 빵 없이 덜덜 떨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아주 적은 얘깁니다만 제가 천 불을 내서 담요 땅바닥에 안 앉도록 한 천 장 사고 같이 갔던 정영숙 탤런트 그분이 또 천 불을내서 자기 여비로 갖고 온 천 불로 빵을 사서 그쪽으로 갖고 가서 빵 냄새가 나니까 사람들이 벌떼처럼 몰려오는 겁니다. 그랬더니 추장이 와서 우리가 나눠주면 싸움 나니 당신 둘이 하나씩 나눠주라는 겁니다. 그래서 한 천여 명을 전부 다니면서 나눠주고 났더니 완전히 그로기가 될 정도에요.

 

MC박태남: 천 불이면 담요 천 장에다가 천 명을 먹일 수 있는 난이 나오는 건가요?

 

이영일: 이틀분 빵이 나와요. 그런데 그걸로 구제가 됩니까? 그날 뿐이지

 

MC박태남: 그분들이 지금 아주 처참한 생활을 하고 계신데, 아예 난조차도 못 드시는 분도 많지만, 난만 먹어서는 영양 상태가 지금

 

이영일: 목축업이죠. 제가 갔을 때 저는 단장으로 가면 호텔방 안 잡고 의사나 간호원들이 와서 치료만 해주도록 지원해주고, 또 국회에서 외교 문제를 다루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혹시 무슨 분쟁이 생기면 그걸 조정하러 갔는데 제가 잘 방도 화장실도 없고. 남자들은 화장실이 없어도 중앙아시아 전체가 우리꺼니까 상관 없는데 여자 분들은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래서 전부 다 가마니로 싸서 전부 다 가마니로 싸서 화장실 만들고 군인들 민병들이 지게 멘 것처럼 총대 메고 다녀요. 그 사람들한테 부탁했더니 물 길러다주고. 그렇게 우리가 살아가는 형편인데, 거기는 목축이 발달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유.. 양젖을 가지고 요구트를 만들었어요. 제가 그때 아침에 빵 한 조각에 요구르트 하나에 중국 사람들 먹는 향채라는 풀 있죠. 그 향채하고 요구르트와 빵이 우리가 먹는 식사의 전부에요. 우리는 요구르트라도 먹고 향채라는 풀이라도 먹으니까 저는 그 당시 향채를 안 먹다가 그때 며칠 먹으면서 익숙해져서 지금은 중국요리에서 향채를 빼지 않습니다. 그 목축업과 밀. 두 가지가 주죠.

 

MC박태남: 그게 전혀 풍족하지는 못한 거죠. 오늘 저희가 회장님을 모셨습니다만 또 한 분은 말씀을 안 할 수가 없는... 권순영 박사님이란 분은 어떻게 해서 콩을 거기에 심자....

 

이영일: 그분이 제가 볼 때는 미국 오하이오대학 식품영양학과에서 박사학위 하고 거기에 부설된 굉장히 좋은 연구소에서 연구원 리서치멤버로서 아주 대접받고 있는 사람인데 그분이 연구소에서 근무하다보니 내가 한국에서 유학와서 학위까지 했는데 평생 연구원으로 살면 내 인생이 별 보람이 없다. 한 번 내 전문성을 봉사할 데가 없는가. 그래서 그분이 중국도 가보고 북한도 가고 아프간도 가서 보니까 가장 처참한 상태가 아프간이다. 그래서 과연 이 사람들이 전부 죽어가는 게 영양실조, 영양결핍으로 죽어가는데 이분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단백질의 안정적 공급이 필요하다. 그런데 단백질의 원천이 없잖아요. 양은 비싸고 양 잡아먹는 건. 그래서 아주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한국콩들이 가서 혹시 잘 자라지 않을까. 그래서 한국의 콩 3,4종을 골라 심어봤는데 몇 군데서는 잘 자라고 몇 군데는 덜 자라지만 비교적 양귀비가 자라는 땅에 콩도 자란다. 아시다시피 아프가니스탄은 전 세계 아편 생산의 70%를 생산 공급합니다.  

 

MC박태남: 전부 양귀비를 키우고 있나요?

 

이영일: 그걸 가지고 팔아서 밀가루도 사먹고 필요한 거 생활수단을 사는 거니까 별로 권장하지 않죠. 아편이 제약회사에서만 쓰인다면 괜찮은데 이게 군벌들 손을 통해서 또는 다른 세력들에 의해 외국으로 수출된다는 건 상당히 심각한 문제 아니에요? 또 아프간 사람들 자신을 위해서도 나쁘게 쓰이고 있고. 그래서 아마 2001년도쯤 돼서는 탈레반들이 아마 아편 생산을 전부 중단시켰을 겁니다. 그건 아프간을 망치는 것이다.

 

MC박태남: 아 탈레반들이?

 

이영일: 네. 그래서 이 사람이 2003년에 들어가서 보니까 문제가 있다. 그래서 그 양반이 콩을 재배해서 성과를 내는데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생각 이상으로 까다롭습니다. 외국 침략을 많이 받아왔기 때문에 역사 속에서 동서아세아지역의 교차점이 아프가니스탄이기 때문에 그 역사 전체가 침략받고 침략하는 역사입니다. 자기 힘이 클 때는 제국을 건설하고 약할 때는 주변 국가들한테 침입당하고. 또 6개국에 둘러싸여 있어요. 그런데 6개국 세력이 전부 아프가니스탄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민족회의가 국회보다 더 큰 권한을 갖는 아주 독특한 나라에요. 그런데 거기서 새 식품을 소개하니 그것이 토속병을 가질지도 모른다 풍토병의 원인인가 조사하자.. 이 사람이 2003년부터 정식으로 콩을 심도록 아프간 농무성의 허가를 받는데 5년 걸렸습니다. 아프간은 자기들한테 유리한 것도 그렇게 의심이 많고 조사하고 체크하고 콩이 나오니까 그걸 분석해서 영양가가 있는가 따지고 실험해보고. 이러니 화학실험실도 아니고 식품기관에서는 한 번 하려면 1년씩 걸리잖아요. 그분이 하여간 7년 동안 고생하고 지금 이번에 갔다오면 34번째 되죠. 미국 갔다가, 콩 씨앗 심었다개 내용 분석하다가... 그러다가 그 양반이 연구한 것이 콩 가공, 판매 이것을 세트로 가르쳐주지 않으면 콩사업이 정착 안 된다. 그런데 콩이라는 단어가 아프가니스탄에는 없습니다. 영어로 소이빈이라는 단어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같이 회의하면서 구태여 소이빈이라는 단어도 없는데 일부러 소이빈으로 하지 말고 그냥 콩으로 하자. 그래서 지금 콩으로, 콩난입니다. 재밌는 것은

 

MC박태남: 콩난이라는 건 콩가루로 만든 난.

 

이영일: 난을 만들 때 90%의 밀가루에 10%의 콩을 넣으면 그게 콩난인데, 그냥 밀가루로 된 난은 하룻밤 자고 나면 굳어져버립니다. 그런데 콩가루를 10% 넣으면 콩이 수분을 붙드는 작용을 해요. 그래서 2,3일 동안 말랑말랑한 난이 나옵니다.

 

MC박태남: 일종의 혁명이네요

 

이영일: 그러니, 시장에서 팔아봤죠. 콩난과 보통난. 콩난이 인기가 더 커요. 그리고 두유를 만들어서, 얼굴 보면 영양결핍된 아이들, 그 애들을 일주일 정도만 두유를 먹었더니 다 혈색이 돌아왔어요. 다시금 정상아동으로 변해가는 겁니다. 그걸 아프간 정부 보사부에서 직접 그 실험을 현장에 와서 확인하고. 산모들이 굉장히 영양실조 때문에 애를 못 낳고 죽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한테, 산모들한테 먹였는데 이 효과가 100%에요. 그래서 산모 보호하는 문제, 영양실조어린이 보호하는 사업이 잘 되고. 그런데 콩을 갈아야 하잖아요. 콩가루 가는 데 제일 어려운 부분이 기계인데, 미제 기계를 하나 사려고 했더니 컴퓨터 장착된 게 30만 달러에요. 너무 비싸서 우리나라 콩방앗간을

 

MC박태남: 우리 방앗간 훌륭하잖아요.

 

이영일: 방앗간을 5만 달러 가지고 방앗간을 옮겨서 카불에 설치했습니다. 고장난 걸 보면서 고칠 수가 있어요. 그게 지금 카불의 관광상품이 됐습니다. 처음 보니까. 거기서 콩가루가 나와서 난 빻는 재료도 주고 두유 생산하고. 요새는 콩가루로 비스킷도 만들어요. 아직 두부까지는 못 갔습니다만. 가공산업을 발전시키면 가게 되죠. 그런데 그거 먹는 성과... 애들의 영양상태 개선에 콩의 기여는 대단히 혁명적이에요.

 

MC박태남: 지금 그럼 콩을 현재는 어느 정도 생산하고 있습니까?

 

이영일: 처음에는 탈레반 점령지역이나 영향지역은 위태롭다고 해서 배제하다가 탈레반들까지도 식량생산은 도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탈레반 점령지역까지 합해서 34개주에 일단 전부 다 파종했어요. 작년 말에 아프간 농무성에서 통과되고 그래서 심기 시작해서 우리나라의 아프가니스탄 친섭협회, 몇몇 단체들, NGO들과 미국에 있는 일부 NGO들이 합쳐서 110톤을 마련해서 심었습니다. 금년의 예상수확량은 4천 톤이에요. 거기 사업에 종사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농부들이 2천 명이 참여했고. 그러니까 오히려 양귀비 가지고는 판로가 복잡하고 문제가 있고 규제와 단속이 심하니까 오히려 양귀비 버리고 콩을 심고 그 콩으로 난을 만들어 파니까 더 효과가 있어요. 아프간 농민들이 점차 소득증대사업에 기여한다. 그래서 이 콩에 대한 수요가 증가됐죠

 

MC박태남: 우리 옛날에 새마을운동 하는 그런 생각이 언뜻 듭니다. 콩 새마을운동인데. 그래도 아마 처음에 양귀비 아편이라는 게 아무래도 좀 마진이 셀 것 같고. 수십 년간 아편을 해오다가 갑자기 바꿔라 하면 콩 해서 무슨 돈이 되겠느냐 해서 굉장히 과정이 힘드셨을 것 같아요.

 

이영일: 그렇기 때문에 양귀비 재배와 관계 없이 노는 땅 많으니까 놔두고 심었죠. 자기네들이 관심을 갖도록 유도했어요. 그런데 문제는 교육을 시킬 수 있는 네트워킹이 없습니다. 만일 우리 KBS 같은 영향력 있는 방송국이 있다면 콩에 대한 계몽도 하고. 그런데 불가능하잖아요. 그래서 일단 소형으로 아마 그런 교육은 시작했죠 권순영 박사가. 직접 현지를 돌아다니면서 비록 수공업적이지만 관계농민들을 교육시킬 수밖에 없잖아요. 그리고 보여주고. 그래서 그분이 지금 콩이라는 걸 아프간 역사에 접목시키기 위해서 권순영 박사 자신이 헌신하고 있는 겁니다.

 

MC박태남: 그런데 지금 현실적으로 종자도 있어야 되고 파종도 해야 되고 아까 말씀하신 방앗간 같은 가공기계도 있어야 되고. 이게 돈은 다 어떻게

 

이영일: 이제사 미국 정부에서도 우리 정부에서도 콩사업의 중요성을 인정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알다시피 지금 가공기술 가운데 제일 중요한 게 멸균두유시설입니다. 아프간은 지금 전기 사정이 안 좋고 냉장시설, 냉장고가 없잖아요. 냉장고 없는 곳에서 두유를 며칠이나 갖고 있겠어요. 그래서 멸균두유를 만들면 근 1년 동안 쓸 수 있어요. 그것만 생산해주면 안정적으로 우선 공급할 수 있고. 콩 종자 문제는 이제 필요 없습니다. 이제는 4천 톤이 생산되니까 거기서 종자를 뽑아놓으니까 이제 종자는 별도로 확보하고 앞으로는 그 종자가 자생해나가야지 더 이상 우리가 콩 종자 모금운동 하는 일은 없겠고. 이젠 가공 지원, 특히 멸균시설 지원이 상당히 경비가 들어갑니다. 아프간 땅에 지원외교에서 우리가 지금 코이카에서도 지원을 시작했고 또 일본에 있는 NGO들이 상당히 적극 지원에 나섭니다. 그걸 보더니 미국 농무성에서도 그럼 너희가 필요로 하는 기계 목록을 제시해라. 그래서 필요한 기계 목록을 제출했는데 심사에서 미국 국회랑 전부 통과돼야 하잖아요. 제일 중요한 것은 아프간전쟁에서 *****하려면 땅을 얼마만큼 군인들이 장악하느냐가 중요하잖아요. 아프간 사람들의 마음을 잡는 겁니다. 한국군은 와서 전투병도 아닙니다만 전부 재건 지원단이에요. 재건 지원병에 대한 테러를 막는 경비병이 가 있지 말이 파병이지 그건 재건 지원단입니다. 재건 지원단 사업과 병행해서 우리의 콩 심기가 점점 아프간 사람들 마음속에 파고들어가면, 우리의 의료봉사활동영역도 굉장히 넓어지고 있고 더욱 중요한 건 아프간 역사에 콩이라는 새로운 식품을 추가해서 그 열매 가지고 아프간 사람들의 영양 문제를 풀어가는 것. 이것도 난 한국 사람이 하는 굉장히 중요한 기회라고 봅니다.

 

MC박태남: 아프간 토양에는 우리 콩이 아무래도 권 박사님이 전문가시니까 그게 아무래도 잘 맞는다...

 

이영일: 양귀비가 제일 수분을 적게 필요로 한답니다. 난 전문가가 아니지만. 콩이 그 다음 순서에요. 좀 척박한 땅에도 자라는 게 콩입니다. 제가 아프가니스탄 사막지대 몇 군데를 쭉 지나다녀보면서 보니까 만일 한국의 새마을 방식이라면 관정 정도 몇 개 뚫으면 얼마든지 쓸 수 있는 땅인데 그것이 방치돼 있어서

 

MC박태남: 이런 사업이 정말 확대된다면 오히려 지금 우리가 사실 아프간에 가서 많이 고생도 하고 파병도 하고 그랬는데 보람을 거기서도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이영일: 미국의 유명한 존스홉킨스 대학의 프란시스 후쿠야마가 그랬어요. 절대적으로 그 사회 전체가 통제되고 있는 나라에는 햇볕정책이 성과를 못 거둔다. 그러나 햇볕정책이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유일한 지역이 탈레반이 점령하고 있는 아프간이다. 그곳에선 햇볕을 쪼이면 쪼일수록 탈레반의 조직력은 약화되고 햇볕 쪽으로 국민의 사회 태도가 옮긴다. 그렇기 때문에 그쪽에는 정말 강압보다는 사랑, 지원, 그리고 그 사람들이 잘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 또 새로운 식량을 개발해주는 것. 아마 우리 권순영 박사나 한국 아프가니스탄 친선협회의 사업이 정말 아프가니스탄을 향한 햇볕정책이니까 그런 햇볕 쪽에 군사작전 못지않게 중요한 비중을 그쪽으로 옮겨줘야만 아프가니스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의 길이 열리지 않겠느냐. 저는 그런 생각을 갖습니다.

 

MC박태남: 오늘 이렇게 나와주셔셔 말씀 감사합니다.

 

이영일: 고맙습니다.

 

오늘은 한-아프가니스탄 친선협회 회장으로 계시는 이영일 회장님을 모셨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은 방금 말씀하신대로 지금 사막의 뜨거운 햇볕이 많이 내리쬐는 곳입니다만

이제는 인도적인 사랑의 햇볕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에서

한국인으로서 이영일 회장님과 권순영 박사가 콩 심기로 아프가니스탄에 따뜻한 햇볕을 지금 보내고 계십니다. 희망의 콩 심기 사업에 대해서 범국민적인 참여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많은 관심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오늘 시간 마치겠습니다.

집중인터뷰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http://www.kbs.co.kr/radio/1radio/interview/paper/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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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2010-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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