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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빛과소금 2011년 12월호 인터뷰기사

아프간에 희망의 씨앗 뿌리는 ‘콩 박사’

권순영(Steven Kwon)

이 나라만큼 지난 10년 간 세간의 주목을 받은 나라가 있을까. 2001년 미국 9․11 테러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2007년엔 한국인 피랍 사건이 터지고, 탈레반이 미군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땅, 아프가니스탄. 총성이 끊이지 않는 이 전쟁터에 그는 8년 전, 먼 훗날을 상상하며 콩을 심었다. 그가 뿌린 작은 콩 씨앗은 ‘겨자씨만 한 믿음’이었고, 5천 명을 배불리 먹인 ‘오병이어’였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콩 박사’로 통하는 영양교육인터내셔널(NEI) 권순영(63) 대표가 지난 11월 6~9일, 나흘 일정으로 한국을 찾았다. 아프간에서 오는 길이었다. 일정 둘째 날 서울 역삼동에서 그를 만났다.

취재 정수영 | 사진 정종갑, NEI(Nutrition and Education International)

아프간에 희망을 심다

이번이 서른일곱 번째 아프간 방문이었다. 2003년 봄 처음 그 땅을 밟았으니, 지난 7년간 그는 귀국이 무섭게 다시 아프간행(行) 비행기에 몸을 실은 셈이다. 어느덧 ‘내 집, 내 고향’처럼 가깝게 느껴지는 곳이 됐지만, 아프간은 언제 어디서 폭탄이 터질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땅이 아닌가. 그래도 8년 전보다는 평화의 기미가 조금은 보이지 않을까.

“치안 상황이 2003년보다 더 안 좋아요. 그땐 탈레반이 물러나면서 생존을 위해 숨어 지내야 했던 시기였는데, 이라크 전쟁이 터지니까 미국의 모든 신경이 이라크로 쏠리게 됐어요. 그 사이에 탈레반은 재결합해서 남쪽으로 쫓겨 갔던 사람들이 다시 올라오기 시작했어요. 2006년부터였죠. 잘 아시겠지만 2007년엔 피랍 사건이 있었지요. 미군이 철수한다는 성명이 발표되자 탈레반은 그 후를 보게 된 거죠. 더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 여기저기서 폭탄을 터뜨리고 있어요.”

권순영 박사도 최근 폭탄 테러를 경험했다. 아프간에서 평화를 상상하는 건 시기상조인지도 모른다.

“카불에 있는 우리 사무실 근처에서 대낮에 자살 폭탄 테러가 터졌어요. 사무실 유리창이 흔들렸죠. 창밖을 보니 까만 연기가 올라 와요. 미군 여덟 명이 죽고, 현지인들도 죽었죠. 이런 일들이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어요. 경찰도 도처에서 검문수색하고요. 농민들이 콩을 심는데 무슨 문제는 없는지 살펴보려고 지방으로 내려가다 보면 경찰들이 차를 세워요. 작년하곤 다르게 지금은 우리가 들어갈 수 없는 지역이 많아졌지요.”

비록 치안 사정은 악화됐지만, ‘희망의 콩 심기’ 프로젝트는 더욱 신뢰를 얻고 있다고 권 박사는 귀띔했다. ‘콩의 매력’을 먼저 맛본 아프간 농민들이 이웃 마을에 콩 재배를 권하고 있단다. 포화 속에서도 알음알음 콩 씨앗이 뿌려지고, 연둣빛 싹은 움튼다. 콩 덕분에 생명의 기운이 부풀어 오르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그 중심에 권순영 박사가 있다.

콩, 영양결핍의 해결책

식품생화학 박사인 그는 8년 전 미국 네슬레에서 의료 식품을 개발하는 책임 이사였다. 어느 날, 아프간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지인이 현지 소식을 전해 왔다. 수많은 부녀자들과 어린아이들이 영양실조로 죽어가고 있다는 것. 임산부의 출산 중 사망률이 세계 최고치를 기록하고, 아이들 4명 중 1명이 다섯 살도 되기 전 폐질환과 설사로 세상을 뜨는 나라가 바로 아프간이었다.

“여성들이 임신하면 ‘태어날 아기가 예쁠까, 남편을 닮아서 코가 잘 생겼을까?’ 상상하는 게 아니라 ‘나도 아기를 낳다가 죽는 건 아닐까?’ 두려워해요. 산모 6명 중 1명이 죽는데, 이들 중 60% 이상이 평균 열여섯 살이에요. ‘10대 엄마’인 거죠. 인생을 미처 살아 보지 못한 소녀들이 죽는 겁니다. 산모가 영양 결핍이니 태어난 아기도 몸이 약할 수밖에 없고요.”

권 박사는 아프간의 참담한 소식을 그저 흘려보낼 수 없었다. ‘영양실조를 해결하는 방법은 없을까, 이들을 위해 무얼 할 수 있을까’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지금의 나 된 것은 많은 이들의 도움 덕분이니, 언젠간 나도 내게 있는 것을 돌려주고 싶다’는 빚진 마음도 한층 커졌다. 책상에 앉아 대책을 찾는 건 한계가 있었다. 휴가를 내고 아프간으로 향했다. 2003년 5월이었다.

“한 의과대학에 가서 ‘건강과 영양’이란 주제로 강의를 했어요. 대학 교수들과 지역사회 지도자들, 정부 관리들도 참석했지요. 그 사람들과 서로 이야길 나누다 보니, 콩이 해법이 될 수 있겠다 싶었어요. 영양실조는 단백질 결핍이거든요. 콩은 ‘밭에서 나는 고기’라 불릴 정도로 단백질 함량이 높아요. 아홉 가지 필수아미노산이 골고루 들어 있어서 뛰어난 단백질 공급원이죠.”

그가 영양 결핍 해결책으로 콩 심기를 제안하자, 사람들은 무릎을 쳤다. 콩이 국민들을 살릴 수 있다면 아프간에 콩을 심어 보자고 뜻을 모았다. 그들은 부탁했다. “권 박사님이 먼저 콩 얘길 꺼내셨으니 우리 좀 도와주십시오.” 그는 고민 없이 청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 수락이 콩 사역으로 커질 줄은 몰랐다. 아프간에 첫발을 내디딘 그해 10월, 권 박사는 후원자들과 함께 NEI를 세웠다. 비로소 아프간 영혼들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됐다.

콩 심으니 사랑이 자라다

아프간에서 콩은 생소한 작물이었다. 국민의 90%가 농업에 종사하지만 사람들은 콩을 듣지도, 보지도, 맛본 적도 없었다. 그야말로 ‘외계 음식’이었던 것. 권 박사는 콩 홍보에 팔을 걷어붙였다. 아프간 정부의 세 부처(농축산부․ 여성복지부․ 공중보건부)도 적극 힘을 보탰다.

“농민들에게 먼저 아프간 현실과 한국의 6․25 이후 상황이 아주 비슷하다고 얘기했어요. 아프간 사람들이 30년 전쟁 동안 2백만 명이 죽었듯, 우리도 6․25 때문에 많이 죽었다고 했지요. 한국 사람들도 배곯고 삶이 고됐을 때 단백질 공급원으로 콩을 먹었다, 영양실조를 해결하는 데 콩이 큰 도움이 됐다고 들려줬죠. 그건 사실이니까요. 제 얘길 듣고 농민들이 ‘아, 한국이 그랬습니까? 우리와 똑같네요. 그런데 콩은 어떻게 심습니까?’하고 물어요.”

그는 농민들에게 콩 씨앗과 비료를 나눠 주면서 심는 법을 성심껏 알려 줬다. 2004~2005년 두 해 동안은 실험 재배를 했다. 아프간 풍토와 기후에 콩이 적합한지 살피는 검증 작업은 성공적이었다. 한 주(州)를 시작으로 12개 주, 2009년엔 26개 주로 콩 재배 지역이 빠른 속도로 늘어갔다. 권 박사는 콩 조리법 전파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콩으로 할 수 있는 요리를 우선 여성복지부 직원들에게 전했다. 이들과 지방으로 가서 임산부와 수유기 여성들에게 콩 요리 강습을 선보이기도 했다. 콩은 무엇보다 아프간의 주식(主食)인 난(Naan․ 화덕에 구운 빵)에도 변화를 일으켰다.

“아프간 사람들은 하루 세 끼로 난을 먹어요. 난은 밀가루 빵인데, 밀가루에는 단백질이 12% 들어 있어요. 그중 26%만 섭취가 돼서 뼈와 근육, 두뇌를 형성하는 데 쓰이지요. 그래서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에게 콩가루 10%를 넣어 보라고 얘기했죠. 밀가루 90%와 콩가루 10%로 난을 만들면 섭취되는 단백질이 두 배 이상 높아지거든요. 콩 난은 맛도 더 좋고 영양가도 높으니 영양실조를 해결할 수 있는 아주 간단한 방법이 되는 겁니다.”

권순영 박사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아프간에서 콩은 으뜸 작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콩=NEI’가 될 정도로 사역 또한 안정궤도에 올랐다. 하지만 늘 콧노래 부르는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아프간은 아편 원료인 양귀비 재배가 주요 소득원이었기 때문에, 사역 초창기엔 농민들의 반발이 극심했다. 콩이 얼마만큼 수익성이 있는지 그들은 짐작하지 못한 터였다. 들어보지도 못한 희귀 작물인 콩을 심었다가 실패하면 어찌할 것인지 우려의 목소리도 적잖았다. 극심한 재정난을 겪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사방이 꽉 막히고 영적 공격이 몰려올 때면 ‘희망의 콩 사역’은 버겁게 느껴졌다.

그는 그러나 때때로 힘들다고 여길지언정, 이 사역을 중단하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분’의 뜻을 위해 삶을 드리기로 결단한 사람이 어떻게 중도 포기할 수 있겠어요?” 권순영 박사는 ‘사명자는 포기하지 않는다’는 신념을 삶으로 증명해 보이고 있었다.

콩을 재배하며 느낀 가장 큰 사랑은…

“2010년은 NEI 사역이 ‘역사적인 분기점을 이룬 해’에요. 아프간 34개주 전역에 콩이 심어지게 됐거든요.” 인터뷰 내내 차분한 어조를 유지했던 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아프간에 새로운 콩 식품 문화가 정착했다는 건 참 놀랍고도 감격스런 일이라고 권 박사는 덧붙였다. 하지만 그에게 가장 큰 감격은 콩을 통해 가난한 아프간 사람들을 살리게 된 것이다.

“생명을 살리는 일보다 더 큰 사랑은 없지요. 사랑을 받은 사람은 그때가 언제일지 모르지만 사랑을 깨닫기 마련이에요. 아프간 사람들 입으로 콩이 들어가면 사랑도 쌓이게 되겠죠. 한국은 과거에 여러 나라들로부터 큰 도움을 받은 국가지요. 이제는 다른 나라를 적극적으로 도와야 해요. 특히 전쟁을 경험한 국가들은 남자들이 많이 죽었기 때문에 부녀자들과 아이들이 살아가기 힘들어요. 생존을 도와야지요. 그게 우리의 사회적 책임이에요.”

권순영 박사는 묵직한 책임감을 안고 이제 콩 사역의 새로운 7년을 계획하고 있다. 아프간 전역에 두유 급식이 이뤄질 수 있도록 두유 생산 시설 설립을 비롯해, 학교를 세워 영양 교육을 펼치고 농부들이 스스로 설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구체적인 계획안이다. ‘영양실조 퇴치를 위한 콩 30만 톤 생산’도 2017년까지 이뤄지길 바라는 꿈이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3년이 지난 1985년, ‘내 양떼를 먹이라’는 부름을 받은 권순영 박사. 15년이 훌쩍 흘러서야 비로소 가슴 안에 불씨로 간직했던 그 말씀에 응할 때가 온 것이다. 평범하고 흔하디흔한 콩이 아프간에선 생명의 통로가 됐다. 그의 후반부 인생행로를 좇아가다보니, 예수의 모습과 겹쳐졌다. 무리를 불쌍히 여겨 물고기와 떡으로 5천 명을 배불리 먹이시고, 마지막 만찬 때 ‘자신의 살’을 떼어 주시고, 갈릴리 호숫가에서 제자들에게 손수 조반을 차려 주신 분. ‘그분’에게 먹인다는 건, 교제와 회복, 그리고 사랑이 아니었을까.

내년에도 포화로 자욱한 땅에 우직하게 콩 씨앗을 뿌릴 권순영 박사. 그 씨앗은 아프간의 양떼들을 배불리 먹일 것이고, 그 땅에 생명의 기운을 퍼뜨릴 것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 했으니, 믿음의 눈으로 보면 아프가니스탄은 이미 생기로 충만한 땅이리라.

<콩 한 알의 힘>

아프간 6인 가족에게 1년간 필요한 콩은 약 300kg. 이는 콩 씨앗 7.5kg의 수확량이다. 2만원이면 가족 구성원 6명을 한 해 동안 살릴 수 있다.

NEI 코리아 후원 문의: 070-8679-3030, www.neifoundatio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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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2011-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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