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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2012년 5월호 인터뷰 기사

2012.05.01 201205호 [120] 인쇄하기

[이 사람의 삶] 아프간 전장에 희망의 씨앗 뿌린 권순영 NEI 회장
“양귀비 심던 메마른 땅에 콩을 심게 했죠”
이항복 " target="_blank">booong@joongang.co.kr

“제가 알던 작은 지식을 보태고자 했습니다. 제 업무가 의료식품 관련이니 정부 보건 관계자나 전문가들을 모아놓고 영양부족 상황에서 콩이 얼마나 유용한 식품인지 알려주고자 했을 뿐입니다. 그것만으로 제 역할은 다하는 셈이라고 생각했죠.”

2003년 6월 아프가니스탄 카불(Kabul)을 떠나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향하는 비행기 안. 재미 영양학자 권순영(64) 박사는 좁은 좌석에서 이리저리 몸을 뒤척였다. 지난 며칠간의 강행군에서 얻은 육신의 피로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엉겁결에 떠맡은 일의 부담감이 더 큰 원인이었다. “두 어깨에 커다란 짐을 얹은 듯했다”고 권 박사는 그때를 돌이켰다.

1976년 미국으로 유학해 공부한 뒤 작게나마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었다고 생각했다. 고생은 좀 했지만 늦지 않게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네슬레(Nestle)라는 다국적 식품회사에 들어갔다. 수십만 명의 직원이 일하는 회사였다. 그의 마지막 직책은 의료식품개발담당디렉터, 우리 식으로 치면 임원급까지 올랐다.

큰 어려움 없이 편안한 일상을 보내던 권 박사는 어느 날 아프가니스탄 오지 여행을 결심한다. 9·11 테러 후 미군이 진주해 탈레반과 알카에다 조직을 밀어내면서 그동안 닫혀있던 아프가니스탄의 문이 열리던 때였다. 부녀자와 어린아이들이 영양실조로 죽어간다는 소식이 그의 귓전을 때렸다.
“임산부 6명 중 1명이 목숨을 잃는다고 하더군요. 출산을 앞두고 꿈에 부풀어올라 있을 임산부들이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다고 해요. 더구나 영아 4명 중 1명이 5세 이전에 사망한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현지 산부인과 의사에게 물어보니 산모의 영양결핍이 가장 큰 원인이래요. 차마 그 말을 흘려들을 수 없었죠. 제가 그때 하던 일이 유아용 조제분유 담당이었거든요.”

당시 미국의 조제분유시장은 우유가 82%를 차지했고 나머지 18%는 두유였다. 100명 중 1명은 유당분해효소가 없어 대안으로 두유를 먹었다. 권 박사는 바로 이 콩의 효능에 주목했다.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90%가 농사를 짓고, 농토도 충분하다. 그러니 콩의 유효성만 잘 알려준다면 영양결핍 해소에 큰 도움을 주리라 생각했다.

그 무렵 권 박사는 마침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일을 시작해보자는 열망이 싹트고 있었다고 했다. 가난한 유학생 시절 고학을 하면서 주변의 도움을 많이 받았던 그다. 그 도움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자신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더 늦기 전에 그동안 받은 것의 반이라도 돌려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콩 재배법까지 가르쳐 달라”
2003년 5월, 회사에서 휴가를 낸 권 박사는 무조건 아프간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될까 회의도 들었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자는 각오였다. 우선 아프간 현지 보건정책 담당자들을 만나 강의를 하기로 했다. 그들을 설득시킨다면 더 효과적으로 일을 진행할 수 있으리란 생각이었다.

아프간 북부 발흐(Balkh)주립대 의과대에서 첫 특강을 했다. 주정부 의료정책 담당자와 대학 관계자 등 20여 명이 그의 강의에 귀를 기울였다. 이틀에 걸쳐 그들에게 기본적인 영양학을 가르쳤다. 그런데 권 박사가 ‘본론’을 꺼내기도 전에 그들이 먼저 물어왔다. “단백질이 부족해 많은 사람이 죽어가는데 좋은 방법이 없겠느냐”는 얘기였다. 권 박사는 기다렸다는 듯 ‘콩 이야기’를 하나하나 풀어나갔다.

단백질 섭취가 가능한 음식은 고기·우유·계란과 콩이 있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에서 고기는 언감생심이고, 우유나 계란을 구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콩은 가능하다. 강의를 듣던 아프간 사람들의 눈에서 빛이 보였다.


그런데 강의가 끝나갈 무렵 권 박사는 당혹스러운 상황에 봉착했다. “콩이 유용한지 충분히 알았으니 우리가 콩을 직접 재배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요구가 빗발친 것이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애당초 권 박사의 계산은 콩의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는 일까지가 그의 몫이었다.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 사람들의 표정이 어찌나 절절하던지 ‘예’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때 하필 그에게 어릴 적 고향의 모습이 떠올랐다고 했다. 6·25 직후의 모습이었다. 내 배고픈 것만 알던 어린 눈에도 동네 다리 밑에 모여 살던 거지들의 생활은 처참해 보였다. 그런데 그가 마주한 아프가니스탄의 실상은 당시보다 훨씬 참혹한 것이었다.

“땟국이 흐르는 부르카(Burqa)를 쓴 한 할머니가 동냥을 왔는데 다음에는 이 할머니를 볼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 뒤에 몰려있는 천진한 아이들도 눈에 밟히고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좋습니다. 같이 해봅시다’ 하고 약속하고 말았어요.”

콩 재배에는 그 역시 문외한이었다. 콩 재배 전문가는 어디서 찾을까? 찾아낸다고 해도 어떻게 접촉해서 협조를 이끌어낼까? 그런 걱정을 하면서도 다른 한쪽에서 조금만 힘을 보탠다면 뭔가 큰일을 해낼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감이 밀려왔다.

“양귀비는 수익성 높지만 먹을 수 없다”
뜻밖에 일이 잘 풀렸다. 미국으로 돌아오자마자 권 박사는 일리노이(Illinois)와 아이오와(Iowa) 주에 있는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두 곳 모두 세계적 콩 생산지로 유명한 곳이다. 육종·재배·생산 등 콩에 관한 모든 전문성이 이곳에 모여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수소문 끝에 20여 명의 세계적 권위자들이 한데 모였다. 처음에는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단순한 봉사 차원의 일을 뛰어넘었다. 없는 시간을 쪼개야 하는 데다 비행기 값 등 모든 경비도 자기부담으로 해야 했다.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더군요. 나 자신만을 위해 살 때는 남의 도움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거든요. 또 남을 위해 100달러를 지갑에서 꺼내기도 어려웠어요. 그런데 도움을 주는 위치에 서보니 세상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어요. 생전 모르던 사람이 이런 일을 하겠다고 하는데도 세계적 전문가들이 서슴없이 나도 힘을 보태겠다며 달려드는 데 감동이었죠.”

2003년 10월, 권 박사는 다시 아프가니스탄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번에는 워크숍을 마련했는데 참가자 중에는 현지 발흐 주정부의 고위직도 여럿 포함돼 있었다. 그들은 당초의 요구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영양과 식품 관련 대학을 설립해 달라고 요구했다. 장차 자신들이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할 힘을 기르겠다는 뜻이었다. 일은 생각지도 않게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주정부에 제안서를 제출했고, 워크숍에 참가한 인사들이 앞장서는 바람에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됐다. 한 달 후 만난 발흐 주지사는 60ha의 땅을 99년간 무료 임대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콩산업 개발 프로그램 승인에 이어 교육기관 설립 인가까지 받게 되자 이 사업을 추진할 조직체를 꾸려야 했다. 영양공급(Nutrition), 고등교육(Education), 국제협력(International) 등의 의미를 담아 비영리 자선단체인 NEI(www.neifoundation.org)를 설립했다.

2004년 4월, 20여 명으로 구성된 전문가가 다시 아프가니스탄으로 갔다. 현지 자연환경을 고려한 6종류의 씨앗도 챙겼다. 콩의 영양정보와 재배방법, 생산관리까지 순차적으로 설명했다. 그때 아프간 중앙정부 농축산부에서 호출이 왔다. 가능성이 있으니 전국적으로 한번 이 일을 진행해보자는 제안이었다. 이듬해인 2005년 12개 주에서 콩을 시험재배하기로 했다.


하지만 첫 시험재배는 불만족스러웠다. 2개 주에서 실패했다. 한 곳은 짐승들이 씨앗을 파먹는 바람에, 다른 한 곳은 농민들이 제때에 물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해 11월 다시 농축산부 관계자들과 만나 사업을 검토하는 자리는 분위기가 침울했다. 그런데 농축산부 장관이 불쑥 나서더니 “콩 시험재배는 성공”이라고 결론지었다. 두 지역의 콩 재배 실패는 NEI의 잘못이 아니라는 판단이었다. 그는 자신이 책임지고 각료회의에 이 사실을 보고하겠다고 약속했다.

“나중에 전해 들으니 각료회의장이 축제 분위기였다고 해요. 남에게 손을 벌리지 않고도 자신들이 스스로 영양실조를 해결할 방법을 찾았다는 것이었지요. 하미드 카르자이(Hamid Karzai) 대통령도 농축산부 장관을 통해 감사의 뜻을 전해왔어요. 돌이켜보면 이때가 콩산업 개발 프로젝트의 분기점이었어요.”

이후 중앙정부의 여성복지부와 공중보건부도 동참을 선언했다. 그때 조인서의 사인이 아직까지도 유효하다고 권 박사는 말했다.
“저 같은 촌사람이 그런 자리에서 사인을 하고 기자회견도 한다는 게 처음에는 믿어지지 않았어요. 개인적으로 큰 영광이었죠. 아프간의 방송매체들도 보도를 하면서 한결같이 ‘우리나라 부녀자들과 어린아이들의 영양실조를 해결하려고 NEI를 보내준 대한민국 정부에 감사한다’고 끝맺었는데 가슴이 뭉클했어요.”

권 박사는 외부인 입장에서 아프간 사람들을 보는 편견을 바꿔야 한다는 말도 했다. “아프가니스탄 관련 보도에서 보면 늘 자살폭탄테러나 내전, 주민의 처참한 모습만 비치지만 실제 그들은 자존심이 대단히 강하고 부지런한 사람들”이라고 그가 말했다.

“그들의 태도를 나중에 알고 저도 내심 놀랐거든요. 우리가 그 사람들의 자존심 코드를 건드린 셈이었어요. 이슬람 사람들은 본디 명예로움과 수치스러움을 분명히 구분하면서 살아요. 특히 남에게 도와달라고 말하는 것도 수치로 여긴다고 해요. 하지만 이 사업이 잘되면 외부에 손 벌리지 않고도 국민을 먹여 살릴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이 그토록 열광한 겁니다.”

탈레반도 “농민들 도와달라”며 지지해줘
그들의 진심을 얻기까지 거쳐야 했던 일이 또 있었다. 콩 시험재배 때문에 12개 주의 농업진흥청 직원을 이틀 동안 교육할 때였다. 워크숍을 끝내고 총평을 하는 자리는 열기로 가득했다. 그런데 몇몇 참가자가 심드렁한 목소리로 “양귀비보다 수익성이 떨어지는데 농민들이 과연 콩을 심겠느냐”고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당혹스러운 질문이었다. 분위기가 가라앉은 상황에서 권 박사도 마땅한 대답을 못 찾고 있는데 농축산부의 한 고위관리가 조용히 일어서서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금 많은 사람이 영양실조로 죽어갑니다. 오늘 아침에도 당신의 옆집 어디에선가 같은 일이 벌어졌을 것입니다. 이웃이 굶어 죽는데도 여러분은 수익성만 따지겠습니까? 그러고도 당신이 아프간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사람을 살리려면 먹을 것을 줘야 합니다. 양귀비는 수익성은 높지만 먹을 수는 없습니다.”

콩 재배에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 얼굴이 붉어진 채 머리를 숙이고 말았다. 그렇지만 양귀비 재배의 수익성을 마냥 모른 채 할 수는 없었다. 농민들은 양귀비의 수익성이 상대적으로 높다면 아무리 콩을 권하더라도 양귀비 경작을 고집할 게 뻔했다. 그렇게 되면 콩 산업을 일으켜보겠다는 당초 계획은 물거품이 될 것이다. 하지만 해결책이 없지 않았다. 권 박사가 말을 이어갔다.

“콩을 재배해서 500달러 정도 수익을 내는 땅에 양귀비를 심게 되면 4000달러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답니다. 8배나 높은 수준이죠. 그런데 이 중 상당부분을 마약거래상과 토호들이 가져가고 농민 몫은 800달러 정도랍니다. 그 정도라면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지요.”

몇 차례의 시험재배를 거쳐 2006년 드디어 아프간 땅에서 콩 1000t을 생산했다. 그런데 기뻐해야 할 권 박사의 속마음은 까맣게 타 들어갔다. 약속한 대로 농민들로부터 콩을 수매해야 하는데 자금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당시 콩의 국제시세는 t당 350달러. 콩을 모두 수매하려면 35만 달러의 거금이 필요했다. 후원금으로 겨우 경비를 조달하던 처지에 그만한 돈이 있을 리 만무했다. 총결산을 하러 아프간 농축산부에 들어가 농민과 대면하려는데 눈앞이 캄캄했다.


“국제 사기꾼으로 몰릴 처지였죠. 괴로웠어요. 수많은 언론매체가 보도하면서 축제 분위기를 이어가는데 마침내 농축산부 주무국장의 입에서 수매 이야기가 나왔어요. 어쩝니까? 솔직히 말씀드릴 수밖에요. ‘콩이 이 나라의 영양실조를 해결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믿고 여기까지 왔는데 후원금을 충분히 걷지 못했다. 가능한 한 빨리 사들이겠다’고요. 이렇게 고백하듯이 말하자 웬일인지 농민들의 얼굴에서 원망의 눈빛이 수그러드는 거예요. 가슴이 찡했어요. 서로 마음이 통한다는 것을 새삼 느꼈죠.”

그때 아프간 농축산부 장관이 “콩이 양귀비 근절에 큰 역할을 할 수 있으니 마약퇴치부를 찾아가보라”고 제안했다. 그는 마약퇴치부 장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좋은 소식이 갈 테니 만나보라”고 소개를 해주기까지 했다. 그동안의 사정을 들은 마약퇴치부 장관에게서 화끈한 답이 나왔다. “35만 달러가 농민에게 가니 좋고, 콩이 임신부들에게 가니 더 좋고, 모두 우리 국민에게 가는 것 아닙니까? 당장 제안서를 만들어오세요.”

그런데 다음날 상황이 다시 틀어졌다. 농민들이 직접 콩을 먹어보곤 정부측에 콩수매를 하지 말아달라는 요구한 것이다. 콩 먹기를 권장해야 하는 마당에 농민들이 자청해서 먹겠다고 나선 것이다. 결국 그해 콩 수매량은 60t에 불과했다. 그 후 농민들은 스스로 콩 요리법을 개발해냈다. 아프간 사람의 주식인 ‘난’에 콩가루 10%를 넣어 만든 ‘소이난’도 그중 하나다. 이 가운데 12가지를 골라 다시 농민들에게 전파했다. 이 소식이 겨우내 입소문으로 퍼지면서 이듬해인 2007년에는 농민 1만 명이 콩을 심겠다고 신청해왔다. 말 그대로 엄청난 성공이었다.

콩 40t이면 6명 가족 1만 가정 겨울 나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콩 사업이 궤도에 오르자 정작 권 박사는 큰 고민에 빠졌다. 그가 감당하기에 일이 너무 커져 회사 일을 돌보기가 쉽지 않았다. 어느 쪽으로든 결정을 내려야 했다. 결국 권 박사는 부인에게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부인도 선뜻 그 결정을 받아들였다. 이후 아프간 콩프로젝트는 더욱 활기를 띠었다. 그는 그 뒤로 1년의 절반을 아프가니스탄에 머무르며 이 사업을 돌보았다.

현재, 아프가니스탄의 모든 주에서 콩을 재배한다. 그 사이 아프간 정국의 변화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탈레반 측에서도 NEI의 프로젝트를 묵인해주는 분위기라고 한다. 오히려 일부 지역에서는 탈레반 지도부가 나서서 농민들이 잘 재배하도록 도와달라는 부탁까지 할 정도였다.

2011년에는 가뭄이 심해 생산이 2000t 정도에 머물렀다. 씨앗 1t을 심으면 40t이 생산된다. 40t이면 6명 식구를 기준으로 1만 가정이 3개월의 겨울을 날 수 있는 분량이다. 2000t이면 50만 가정, 300만 명이 혜택을 보는 셈이다. 올해는 3000t 생산량이 목표다.

하지만 아직 시작이다. 권 박사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전국적으로 영양실조를 해소하려면 총 30만t의 콩이 생산돼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는 자급자족 위주의 콩재배가 이뤄지지만 점점 대량생산 쪽으로 방향을 틀어간다. 가족도 먹이고 나머지는 시장에 팔자는 것이다. 그는 “이제 가공 공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아프간 경제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려면 가공 공장을 세워 가공한 콩을 일반 국민에게 공급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2007년부터 200kg을 가공할 수 있는 한국형 콩가루 방앗간을 세워 보급해왔지만 아직 턱없이 부족하다는 설명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콩 산업 프로젝트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생산-가공-보급 판매라는 전체 과정에서 이제 겨우 생산의 기틀을 마련한 셈이지요. 이제는 일부 독지가의 힘만으로 해결할 단계를 벗어났어요. 국제사회의 굵직한 지원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최근 NEI는 유엔과 3년간의 공동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유엔이 먼저 제안했다고 한다. 옥수수가루나 밀가루를 직접 제공하기보다 스스로 자급할 수단을 만들어주는 방법이 더 효과적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란다. 앞으로 3년 동안 350만 달러를 지원받게 된다. 권 박사는 유엔의 도움을 받고 크게 고무된 표정이다.

“2006년 한 지역에서 90여 명의 농부를 모아 강의한 적이 있어요. 마땅한 강의실이 없어 근처 호텔 식당을 빌려서 했는데 점심도 제공하고 실습도 한 다음 씨앗까지 줘서 3시쯤 농민들을 돌려보냈어요. 그런데 이 중 6명이 5시쯤 다시 호텔로 돌아와 우리를 찾는다는 거예요. 무엇이 잘못됐나 겁이 덜컥 났죠. 그런데 이분들 말을 듣고 정말 한참 눈물을 쏟았어요. 오늘 하루 호텔음식 먹어가며 중요한 사람들처럼 대우를 받았는데 너무 들뜬 나머지 동네 어귀에 가서야 감사 인사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생각났다는 거예요. 그만큼 아프간 사람들의 심성이 아름답고 착해요. 그러니 제가 서른아홉 번이나 아프가니스탄을 다녀왔지요.”

http://magazine.joinsmsn.com/month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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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2012-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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